기고문

작성일 : 2019-12-07 14:15

◆기고문=임용순 울산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공업연구관

▲염포부두 선박화재 그리고 18시간 30분의 기적
 

▲임용순 울산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센터장

 

△2019년 9월 28일 오전 10시 56분, 평범한 토요일 아침의 평화를 깨는 한 통의‘카톡’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인지라 느긋하게 차 한 잔하며 천천히 여유로운 주말을 시작하려던 순간이었다.
‘카톡, 카톡’휴일 아침의 평화를 깨는 그 소리는 결코 반갑지 않은 소리였으며 제발 울리지 말았으면 하는 두려움의 소리였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도입과 함께 일과 삶이 균형을 갖추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한창이지만 화학사고 대응업무를 하는 우리에게 워라밸(work-life balance)은 그저 사치이고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사고신고 접수로부터 30분 이내 현장 도착, 골든타임 준수!” 일반직 공무원인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고 임무였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화학구조팀이 염포부두에서 발생한 선박화재 현장으로 급히 출동한다는 메시지였고, 화학물질 운반선 화재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울산 염포부두 선박화재 전경

 

깜짝 놀라 TV를 켜보니 “울산 염포부두 선박화재”소식이 특보로 전해지고 있었다.  염포부두에 정박 중이던 노르웨이 선적‘스톨트 그로인란드(STOLT GROENLAND)’호로부터 뻗어 나온 시뻘건 불덩어리가 울산대교 위쪽으로 하늘 높이 솟구치고 있었다.
 

순간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 “해양(선박) 사고는 해양경찰과 해양수산청!”
 아주 오래 전 모 방송사의 프로그램 중 특정한 상황에 놓인 개그맨이 선택의 기로에설 때마다“그래 결심했어!”라는 대사를 외치며 선택을 결정하고 그 결과를 코믹하게 풀어주는 “인생극장”이라는 인기프로그램이 있었다. 인생은 항상 선택의 연속이며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은연 중 표현한 것이다.
 

바로 그 때 그 순간이 내가 행동의 결정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해양 선박화재 사고 – 화학물질 운반선 여부는 알 수 없음, 출동지령도 없음 – 게다가 토요일!, 무시해? 아니면 선제적 출동?’
 

▲현장수습조정

 

평소 HNS(Hazard and Noxius Substance) 업무로 소통하던 울산해양경찰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담당자의 목소리가 무척 다급했다. 제발 아니었으면 했지만 불행히도 화학물질 운반선 화재였다.
 

화재가 발생한 선박에는 유해화학물질인 아크릴로니트릴과 이염화에틸렌을 포함하여 인화성이 높은 스티렌 등의 화학물질 14종 2만7117톤이 실려 있었다. 
 

비록 토요일이긴 하였지만 팀원들을 비상소집하고 KTX오송역으로 달려가 울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하행 열차에서도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이미 현장에 출동 중인 해양경찰 및 팀원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화학물질 정보와 사고대응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했다.
 

토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팀원들이 신속하게 출동하여 실시간 기상정보를 반영한 우려지역에 대한 측정분석은 물론 지휘본부에서 관련기관들과 함께 사고대응에 여념이 없었다.
 

울산에 도착하자마자 사고현장에 설치된 긴급구조통제단 지휘본부로 달려갔다. 지휘본부에는 이미 소방‧해경‧환경 등 사고대응 관계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지휘본부 뒤쪽에서는 선박이 검은 연기를 쏟아내며 활활 타고 있었다. 
 

선박에는 고위험 화학물질을 다량 실려 있어 화재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모두 긴장하고 있었다. 
 

지휘본부에 도착 후 소방 및 해경 담당자들과 파악된 화학물질 목록을 바탕으로 각 화학물질이 갖고 있는 물리화학적 특성‧독성 및 해양누출에 대한 대응방안 등 화학물질 정보를 제공하고 효과적인 화재 진압방법을 함께 논의했다. 워낙 화세가 거세 접근이 불가능하여 선박 카고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어 수시로 진압작전 회의를 반복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화재 진압에 최소 2~3일이 소요될거라고 예상하였지만 결코 꺼지지 않을 듯 거칠었던 화염이 어느 순간 조금씩 사그라들더니 마침내 18시간 30분만에 완전히 진압되었다.

 

▲화학물질 처리 기술지도

 

울산소방본부 및 중앙119구조본부로 구성된 육상의 소방력과 해상에서 분당 13만리터의 물을 쏟아붓는 해양경찰 소속 소방정의 연합작전에 하늘을 집어삼킬 듯 거칠었던 화염도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구조작업 중 소방관과 해경 7명을 포함하여 총 18명이 부상을 당하였지만 경상에 그쳤고 더 이상의 화재‧폭발도 발생하지 않은 채 마무리된 염포부두 선박화재 사고는 기적이라고 표현해도 하나도 과하지 않았다. ‘만약 화재가 2~3일간 지속되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선박화재 진압의 주연은 소방과 해경이었지만 울산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환경팀(낙동강유역환경청)은 사고현장에서 조연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환경팀은 화재 초기 소방‧해경‧지자체 등 외부 기관으로부터 출동 지원요청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속히 모든 가용 측정분석 차량과 현장수습조정관을 사고현장에 급파하였고, 긴급구조통제단 지휘본부에서 상주하며 소방 및 해경관계자들에게 사고대응에 필요한 화학물질 정보를 수시로 제공하며 화재진압을 도운 것이다.
 

화재가 완전히 진압된 후 지휘본부에서 함께 고생했던 소방‧해경 및 환경 관계자들이 서로 성공적인 협업의 성과를 자축했다.

 

화재가 완전히 진압된 이후에도 환경팀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화재선박에 남은 화학물질을 다른 선박으로 안전하게 이적할 때까지 울산해양수산청 및 울산해경과 협력을 지속했다.
 

지난 10월 16일 해양경찰청 본청에서 두 분의 해경 관계자가 울산을 찾아오셨다. 염포부두 선박화재에서 보여준 환경팀의 체계적인 사고대응에 깜짝 놀랐다는 말과 함께 감사의 인사말을 전하고 향후에도 더욱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약속했다.

 

불과 7년전 구미 불산 누출사고에서 사고대응의 책임을 회피하며 서로에게 떠넘겼던 아픈 기억과 달리 이번 염포부두 선박화재사고는 사고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소방-해경-환경 등 관련기관들의 신속한 협업과 적극적인 사고대처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부처간 협업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평상시에 함께 토론하고 훈련하며 상호간 유기적 관계를 꾸준하게 구축해왔기 때문에 실전에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선박화재 사고를 계기로 울산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환경팀은 앞으로도 관계기관 간 더욱 더 끈끈한 유기적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자연재난·사회재난 구분없이 어떠한 재난대응 작전에서도 결코 실패하지 않는 최정예 재난대응 기관으로 발전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끝으로 토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게 신속하게 사고현장으로 출동해 밤새 사고대응에 힘써준 우리팀 모든 동료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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