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기고문= 최주섭/한국자원순환정책연구원장

소비를 권하는 사회

작성일 : 2017-06-05 06:30

◆기고문= 최주섭/한국자원순환정책연구원장

▲최주섭/한국자원순환정책연구원장

(전 환경부 산업폐기물 과장)

(전 한국발포스티랜재활용협회 부회장)

(전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이사장)

 

▲소비를 권하는 사회


△신축 7년차 아파트로 이사 와서 1년쯤 살고 있는 K씨는 가스보일러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9개월 전쯤 가스보일러에서 물이 새어 나와 고장수리 신고를 했다. 직원은 작은 부품을 교체했다며 부품 값과 출장비로 2만 5,000원을 요구했다.

그 후 3개월 쯤 지나 또 가스보일러에서 물이 새어 나왔다. 같은 수리원이 왔다. 다른 부분이 문제가 생겼다며 미안해 하면서 수리를 무료로 해 줬다. 7년쯤 되어 하나 둘 고장이 나기 시작 한단다. 아내가 수리 대신 신품으로 교체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조금 더 써 보란다. 이후 또 물이 샜다. 중요한 부품을 교체해야 된단다. 수리비로 9만원이 들었다. 직원은 이번에는 오래 쓸 수 있을 거라며 돌아갔다. 열흘 쯤 후에 또 물이 샜다.

K씨와 아내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럴 바에야 가스보일러를 타사 제품으로 바꾸는 것이 났겠다고 항의했다. 직원은 미안한 표정으로 수리비가 15만원 들어갈 거라며, 신품 교체를 권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상황에서 추가 수리를 포기했다. 평소 알뜰 소비를 주장하던 K씨는 결국 보일러 대리점에 연락하여 같은 브랜드 제품을 66만원 주고 설치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스보일러의 수명은 7년 내외였다.

 

소비를 권하는 사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소비(consumption)는 부정적인 의미였다. 그것은 체력을 고갈시키는 소모성질환인 폐결핵을 가리키는 일반 용어였고, 그 당시 ‘소비’의 사전적 정의는 ‘낭비하는 행위, 약탈하는 행위, 써버리는 행위’였다.주1)<제러미 러프킨, 한계비용 제로사회, 2014, p403>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소비가 미덕인 사회이다. 우리는 소비를 통해 욕구를 충족시키고, 소비를 통해 자기정체성을 만들며 소비에 의해 사회의 위계질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주2)<장석주, 소비의 식민지에 저항하라, 사회를 말하는 사회, 북바이북, 2014, p13>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대량생산·대량판매 전략으로 가격을 낮추고, 과소비를 유도한다. 한 개 사면 덤으로 하나 더 주는 제품, 10개들이 묶음 제품, 인기 품목에 끼워 파는 제품들은 소비자에게 필요량 이상 구입을 하게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구입한 식품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가정의 냉장고 크기는 점점 대형이 인기다. 잠재 고객의 추가적인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증정품이나 경품, 무료 견본도 이용되고 있다.

수입이 충분하지 않은 이들에게 소비의 기회를 주는 신용판매도 소비자의 욕망을 해결해 준다. 그들은 현재 갖고 싶은 것을 곧 바로 손에 넣고 미래의 수입으로 값을 지불한다. 수입, 직업, 재산이 없이도 살 수 있는 대출 상품 닌자(NINJA, no income, no job, no assets)는 개인의 소비를 극대화한다.주3)<세르주 라투슈, 낭비사회를 넘어서, 민음사, 2014, p30>
 
자동차 생산업체는 신차의 60개월 할부 판매까지 시도하고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 버틴 소비자들에게는 제품 수명이라는 무기로 무릎을 꿇게 한다. 정부와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성장율 4.8% 이상은 넘어야 침체된 고용이 늘어나기 시작한다며, 생산과 소비를 부추긴다.
 
 

얼리 어답터

기업은 고성능, 신기술의 제품을 갖고 싶어 하는 소비자를 우선적으로 공략한다. 에버렛 로저스(Everett Rogers)의 ’혁신전파법칙‘에 의하면 신상품이 출시되기 전 예약 구매하는 혁신수용가(Innovator)가 2.5%, 출시 후 즉시 구입하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가 13.5%, 그리고 이를 이어서 구입하는 초기 다수수용가(Early majority)가 34%, 후기 다수수용가(Late majority)가 34%, 마지막까지 신제품 구입을 최대한 미루는 느린수용가(Laggard)가 16%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새로운 스마트폰의 판매 첫날 매장에 줄 지어 기다리는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떤 외국 화장품 회사는 세계 최초로 한국 소비자들에게 신제품을 소개하여 신제품 평가를 받기도 한다.
 
 

광고의 힘

현대적 광고의 출현과 함께 소비가 재앙에서 사회적 열망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면모를 갖추었다. 소비자가 된다는 것은 성공의 상징이자 완전한 현대인이라는 의미의 전형이 되었다. 광고인 저스터스 조지 프레더릭은 잡지 <어드버타이징 앤드 셀링>에 기고한 글에서 최초로 진보적 진부화의 개념을 도입했다. “우리는 소비자들이 자동차, 라디오, 옷 등과 같은 소비재 상품을 사용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되팔거나 조속히 내다 버리기 위해서 구입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진보적 진부화의 원리는 유능해지고 최신 유행에 발맞추기 위해 물건을 구매하는 것, (...) 물건을 마지막 순간까지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대성의 감각을 갖추기 위해 구매하는 것이다.”주4)<전게서, p63>
  
그러나 성능이 좋은 신 모델의 출현이나 구미를 당기게 하는 광고에 의한 유혹은 감내한다 해도 제품의 기술적 결함 앞에서는 대부분 속수무책이 된다.

 

의도된 수명

전기 램프에서 안경에 이르기까지 우리 몸의 필수적인 보조수단이 된 기계나 기구는 특정된 부품의 의도된 결함으로 인해 고장을 일으키는 시점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1940년 듀폰사는 합성섬유로 만든 스타킹을 출시하여 여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초창기에 나온 나일론 스타킹은 자동차 한 대를 끌 수 있을 만큼 튼튼하게 만들어져 거의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엔지니어들은 이 기적의 섬유를 덜 질기게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모난 것이 닫기만 하면 올이 풀리는 스타킹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 스타킹으로 갈아 신어야 한다. 1881년 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전구는 수명이 1,500시간에 달했다. 1920년대 생산된 전구는 평균수명이 2,500시간이었다. 1924년 제너럴 일렉트릭사를 포함한 전구 제조업체 관계자들은 제네바에 모여 전구의 수명을 결정하는 회의를 열었다. 이른바 ‘푀부스 카르텔’이 탄생했다. 회의 결과 전구의 수명은 1,000시간 이하로 제한하자는 목표가 결정되고, ‘1,000시간 위원회’의 감시 활동 덕분에 1940년대에 이르러 그 목표가 달성됐다. 결국 소비자가 굴복하는 것이다.주5)<전게서, p40>
 
 
스마트폰 가입률 세계 1위 

오는 2020년이면 세계 스마트폰 보급대수가 유선전화 가입자 수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전 세계 스마트폰 보급 대수가 오는 2020년엔 61억 대에 이를 것이라고 테크크런치가 3일(현지 시각) 에릭슨의 연례 모빌리티 보고서(Mobility Report)를 인용 보도했다. 전망대로라면 앞으로 5년 내에 전 세계 인구의 70%가 스마트폰을 이용하게 된다는 의미라고 테크크런치가 전했다. 주6)<ZDNet Korea, 2015. 6. 4, 스마트폰 보급, 5년 내 유선전화 추월>


미국 모바일 시장분석업체 플러리 에널리틱스(Flurry Analytics)에 따르면, 한국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스마트폰 포화 상태에 접근했다. 메릴린치 보고서에 의하면, 2013년 2분기 기준으로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62%로 같은 기간 스웨덴(51%), 미국(49%), 프랑스(40%), 독일(38%), 일본(36%)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10% 이상 높다. 주7) <iT Donga, 2013. 12. 30, 2014년 국내 IT 시장 전망, 성숙기로 접어든 모바일 시대>

통계청이 2017년 3월에 발표한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스마트폰 가입률은 90.6%다. 주8)<전자신문, 2017. 3. 23, 국민 100명 중 90.6명은 '스마트폰 가입자'>
 
업계가 모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스마트폰 할부 채권 비용이 11조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 국민 1인당 스마트폰 할부로만 20만 1,167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한다. 2년이 지나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은 대부분 버려지고 새것을 구입하여 사용할 것이다. 미래에도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충족시켜줄 만큼 자원은 남아있을까? IT 기술은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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